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덕천(德川)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1921년에는 대한청년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그보다 앞서 1920년에는 김성극(金星極)·홍두식(洪斗植) 등이 안도현(安圖縣)에서 조직한 광복단에 가입하였다.
1921년 1월에는 왕익붕(王益鵬)과 함께 평남 덕천군에서 공작 중 동월 27일 밤에 동군 태극면 영창리(太極面永昌里) 산중에서 태극면 주재 순사 4명을 사살하고 26연발식 권총을 빼앗은 뒤 도피하였다.
왕익붕은 얼마 후 체포되었으며, 그는 동년 5월까지 평북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 계속 활동하다가 평북 강계(江界)지방에서 일경에게 탐지되어 체포되었으며, 1923년 3월 2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1923년 6월 20일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산화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11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80면
- 동아일보(1922. 5. 2, 5. 14, 5. 22)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9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5·33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32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519·526·535·556·557·558·561·562·5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