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1911년 3월에 서울 오성학교(五星學校)를 졸업했다.
동년에 만주(滿洲)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로 망명하여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 특기반 제1기로 졸업하였다.
1913년에는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교사신축 및 훈련장 확장공사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동년에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격검·유술교관으로서 학생들의 전투력 향상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교생들과 함께 농토를 개간하여 수확한 것으로 학교운영에 충당하였다.
1919년 9월에 일본군의 사주를 받는 마적단의 기습으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일부 교직원과 소수의 사관생도들이 부상 또는 납치당할 때 중상을 입어 치료하던 중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32세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76·18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6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9·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