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충북 청원(淸原) 사람이다.
1896년 3월에 이승만(李承晩)·윤치호(尹致昊) 등과 함께 독립협회(獨立協會) 창립에 참여하였다. 1898년 11월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도총무부장으로 활약하다가 이승만(李承晩)·유근(柳瑾)·나철(羅喆)·안창호(安昌浩)·남궁억(南宮檍)·양기탁(梁起鐸) 등 367명과 함께 붙잡혔다.
1902년부터 1904년 사이에 이승만(李承晩)·박용만(朴容萬) 등과 삼만(三萬)으로 결의하여 의형제를 맺고 만주(滿洲)로 망명하여 간도(間島) 용정(龍井)에서 이상설(李相卨)·이동녕(李東寧)·여준(呂準) 등과 함께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하고 민족교육과 독립사상을 주입시켰다. 또한 독립군(獨立軍) 양성 등에 주력하였다.
1907년에는 안창호(安昌浩)·김구(金九)·이동녕(李東寧)·이동휘(李東輝)·양기탁(梁起鐸)·이회영(李會榮)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였다. 또한 해아(海牙) 밀사의 여비 1만 8천원을 교포로부터 모금하여 전달하였다.
1909년에는 러일전쟁(露日戰爭) 및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전후하여 이범윤(李範允)·이상설(李相卨)·이동녕(李東寧)·이동휘(李東輝)·박은식(朴殷植)·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노령(露領)에서 활약하였다. 1910년 연해주(沿海州) 지역에서 〈해조신문(海朝新聞)〉·〈대동공보(大東共報)〉 등을 발간하였다.
또한 13도 의군부(義軍府)·성명회(聲明會)·권업회(勸業會) 등을 창설하여 민족계몽 및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11년 6월 21일에 별세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기려수필 116·11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4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7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64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350·36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2권 233·39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