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전남 강진(康津)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4일 강진군 강진읍(康津邑) 장터에서 이기성(李基性)·오승남(吳承南) 등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주민들을 규합, 장터에 모인 1,000여명의 시위군중과 같이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운동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4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長興支廳)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5월형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5. 21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614∼6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