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18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寧海面)・병곡면(柄谷面)・축산면(丑山面)・영덕면(盈德面) 등 4개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창수동의 이수각, 신리동(新里洞)의 이현설(李鉉卨), 인량동(仁良洞)의 이현우(李鉉祐) 등이 3월 19일 주재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계획하고 각자 마을 주민들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영양(英陽)의 이종구(李鍾龜)도 오촌동(梧村洞)・삼계동(三溪洞) 주민들을 이끌고 신기동(新基洞)에 도착했다. 이어 갈상동(葛上洞), 신리동 등을 지나 창수동에 이르렀다. 한편 창수동에서는 이수각 등이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이에 김보식도 백수학(白壽鶴)에게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독려하고 함께 참가했다. 오후 4시경 약 200명의 군중은 각자 태극기를 흔들거나 막대기를 휴대하고 ‘한국독립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로 행진했다. 시위 군중은 주재소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건물 3동과 시설물, 서류와 기구 및 총기류 등을 파괴・파손했다.
김보식은 만세운동 참가로 창수경찰관주재소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3월 31일 영덕경찰서에 구류되었다. 같은 해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6월 9일 대구감옥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19. 6. 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