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많은 학생들이 구속되었다. 이에 호응하여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동조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최창한은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의 경성공립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30년 1월 19일 2학년의 최일규(崔日圭)로부터 모교 학생들에게 동조 시위를 촉구하는 격문 살포를 제안받고 계획에 합류하였다. 최일규는 「1930년 조선혁명」이란 제목으로 “동포여 깨어나라. 강하게 싸워라. 우리의 혁명의 기회를 잃지 마라. 태극의 기치는 우리를 기다린다”라는 내용으로 격문을 작성하였다.
최일규와 김규창(金奎昌) 등은 이 격문 200여 매를 제작하여 최일규의 하숙집으로 운반하였다. 최창한은 격문 살포의 책임을 맡았다. 1월 20일 최창한은 최일규와 함께 격문 60여 매를 경성공립농업학교 2, 3학년 교실에 살포하여 동조 시위를 촉구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1월 25일 경성농업학교 학생들이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30년 2월 27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공소하였으나 1930년 4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이 확정되어 9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청진지방법원:1930. 2. 27)
- 집행원부(執行原簿)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4. 8)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4. 8)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4. 9)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1) 제1권 제6호 54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권 315, 1524~152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6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