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기삼연 (奇參衍) 의병장 (義兵將) 이 거의시 (擧義時) 김형식 (金炯植) 박용근 (朴溶根) 등과 함께 입진 (入陣) 하여 의병 (義兵) 수백명 (數百名) 을 초모 (招募) 하였으며 동년 (同年) 8월 12일 영광읍성내 (靈光邑城內) 에 이르러 적군 (敵軍) 과 교전 (交戰) 하고 동년 (同年) 10월 18일 적군 (敵軍) 수백명 (數百名) 이 영광 (靈光) 을 수색 (搜索) 하고 의병장 (義兵將) 김용구 (金容球) 사가 (私家) 에 방화 (放火) 할때 피체 (被逮) 되어 광주 감옥 (光州監獄) 에 이송 (移送) 되어 유배 (流配) 6월을 받는 등 2년여 (年餘) 의 활동 공적 (活動功績) 이 사실로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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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1906년 봄 국권회복을 도모하기 위해 김용구(金容球)가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하고 동지를 규합할 때 여기에 동참하여 활동하였고, 이어 1907년 8월에는 기삼연(奇參衍)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김형식(金炯植)·박용근(朴溶根)·오태윤(吳泰允)·이영화(李永華) 등과 함께 의병을 소모하는 한편 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같은 해 10월 일군이 수백 명의 군중을 모아 놓고 김용구의 집에 방화할 때 붙잡혀 광주(光州)로 이송되었으며 1908년 봄 유형(流刑) 6개월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2·3面
- 菊史遺稿 42面
- 晋州鄭氏家乘譜(1941年刊) 43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2輯 687·69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