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
1906년 봄에 김용구(金容球)와 함께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는데 뜻을 같이하고 일심계(一心契)를 조직, 동지들을 규합하며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1907년 8월 김용구가 기삼연(奇參衍)과 함께 거의(擧義)하게 되자, 김형식(金炯植)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소모(召募)하여 영광읍 성내(城內)에 이르러 일군과 접전을 벌였지만 패하여 동쪽으로 이동하며 구례(求禮) 연곡사(蓮谷寺)와 하동(河東) 화개(花開) 등지에서 항전을 계속하였다.
같은해 12월 2일 연곡사·화개·오동(梧洞)·남문(南門) 등지에서 좌익(左翼)에 김창복(金昌卜), 호군( 軍)에 박용근(朴溶根), 참모(參謀)에 봉제화(奉齊化)가 각각 임명될 때 종사(從事)에 임명되어 일군과 2시간여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여 많은 전과를 거둔 뒤 다시 염광 염치(廉峙)로 이동하였다. 이후 송치(松峙)·영광·장성(長城)·고창(高敞) 등지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2輯 687∼690·70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