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6년 11월 3일 광주(光州)의 한국인 중등학교에서 학생 십수 명이 마르크스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했다. 1927년 봄 무렵 성진회는 형식상 해산했으나 실제로 회원모집과 마르크스 연구는 지속됐다. 광주공립농업학교에는 공산주의 연구를 위한 2~3개의 반이 구성됐으며 동맹휴교 당시 20여 명이 참가하고 있었다.
1928년 6월경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에서 동맹휴교가 감행됐다. 광주공립농업학교에서는 성진회원 김복만 등이 공산주의 연구반을 중심으로 동맹휴교를 주도했으며, 임일채 또한 이에 참여했다.
이후 1929년 10월 중 최정기(崔貞基), 최차도(崔次道), 안종변(安鍾卞)은 2학년 유환묵(劉煥黙)과 함께 2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연구를 위한 비밀결사 조직을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 임일채는 1930년 1월부터 공산주의 연구 비밀결사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러나 5월 10일 무기정학을 받아 2학년을 중도 퇴학했다.
임일채는 이같은 활동으로 인해 체포됐다. 1930년 7월 17일 광주지방법원 예심에서 면소로 종결 결정됐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豫審終結決定)(광주지방법원, 1930. 7. 17)
- 명예졸업증명서(광주농업고등학교, 1949.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