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40년 11월 대구사범학교 8회생과 9회생 학생들이 일제의 패망과 조선독립을 예견하며 문학연구를 가장한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문예부’를 조직했으며, 1941년 1월 이를 ‘연구회’로 개편했다.
1941년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5학년 재학 중 8회생의 졸업이 임박해지자 2월 15일경 이용남(李容男)의 방에서 문홍의(文洪義) 등 9회생 동지들과 만났다. 이들은 9회생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를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다혁당을 조직했다. 이들은 조선인으로서 일치단결해 민족의식을 높이고 문예, 예술, 운동 등의 각 분야에서 실력을 양성해 일제로부터 조국을 독립시키자는 목적을 세웠다. 이들은 부서를 정해 각기 담당자를 선정했다. 이종악은 이중 총무부와 연구부에서 활동했다.
이후 3월 중순경부터 5월 상순경까지 이종악은 약 3회에 걸쳐 서용원(徐榕源) 방에서 모였다. 이들은 각 연구부문의 활동 상황, 각 부문의 확대, 강화, 연습을 비롯해 학생 간 차별 철폐에 대한 대책과 방침 등에 관해 협의했다. 한편 손경익(孫景翼)을 비롯한 10회와 11회생들은 지하활동을 지속했다.
그러나 7월경 8회 졸업생 정현(鄭鉉)이 가택수색을 당하면서 이들의 기관지였던 「반딧불」이 발각됐다. 또한 정현과 충청남도(忠淸南道) 논산군(論山郡) 노산국민학교(魯山國民學校) 교사이자 문예부원이었던 박찬웅(朴贊雄)의 집에서 비밀결사에 참여한 동지들의 ‘활동보고서’가 발견됐다. 이로인해 이종악 등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종악은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에 학교 내 비밀결사에 가입해 활동하다 1941년 10월 23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또한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예심종결결정(判決文)(豫審終結決定)(대전지방법원:1943. 2. 8)
- 청도의 독립운동사(안동독립운동기념관, 2010) 329, 3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