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11월 함남 (咸南) 원산 (元山) 에서 덕원청년동맹 (德源靑年同盟)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검속 (檢束) 되고, 1929년 2월 원산청년동맹 (元山靑年同盟) 간부로 원산쟁의비판연설회 (元山爭議批判演說會) 를 홍보하는 격문을 배포하다 체포되었으며, 1930년 1월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원산 만세 학생운동 (元山萬歲學生運動) 을 전개할 목적으로 ‘전조선 (全朝鮮) 전투적 (戰鬪的) 학생 (學生) 에게 격 (檄) 함’이라는 제목의 격문 약 2,000매를 인쇄해 배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고, 1933년 2월 항만적색노동조합 (港灣赤色勞動組合) 활동으로 검속 (檢束) 되어 동년 5월 기소유예 (起訴猶豫) 를 받고 1934년 1월 병사 (病死)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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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유삼봉은 1927년 11월 함남 원산에서 덕원청년동맹(德源靑年同盟)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검속되고, 1929년 2월 원산청년동맹(元山靑年同盟) 간부로 원산쟁의비판연설회(元山爭議批判演說會)를 홍보하는 격문을 배포하다 체포되었다.
1930년 1월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원산만세학생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전조선 전투적 학생에게 격(檄)함'이라는 제목의 격문 약 2,000매를 인쇄해 배포하였다가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았다.
1932년 12월 10일 최동희(崔東熙)의 권유로 적노웅기그룹(赤勞雄基그룹) 조직책임을 맡아 조직 확대에 힘을 쏟다가, 1933년 2월 항만적색노동조합(港灣赤色勞動組合) 활동으로 체포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같은 해 5월 기소유예를 받았으나 1934년 1월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中外日報(1927. 11. 7, 1928. 7. 16, 1930. 1. 22, 1930. 9. 24)
- 조선중앙일보(1933. 5. 24)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30. 9. 29)
- 東亞日報(1929. 2. 2, 1929. 2. 6, 1934.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