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북 명천(明川) 사람이다.
1930년 1월 함경북도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鏡城公立高等普通學校) 2학년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
1929년 10월 30일 전남 나주역에서 한·일 학생간의 충돌로 발단된 광주학생운동은 이후 전국 각처와 국외에서 전민족적으로 전개되었다.
1930년 1월 경성공립고보에서도 광주지역 학생시위에 호응하는 학생시위를 계획하였는데, 이때 우자옥은 격문과 깃발을 제작하는 한편 학생들을 독려하며 가두시위에 앞장섰다.
거사일인 1월 25일에 우자옥은 2학년생 40여 명을 선발대로 이끌고 경성(鏡城) 서문밖에 집합하여 동교생 300여 명과 함께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 시위대는 인근의 경성공립농업학교까지 행진하여 농업학교 학생들의 시위참가를 촉구하는 한편 태극기를 건네준 뒤, 도처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를 제지하는 일경에 의해 시위대가 해산되고 시위의 앞장에 섰던 우자옥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1930년 3월 6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소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光州學生獨立運動史(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74) 205∼208面
- 判決文(1930. 4. 24. 京城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626∼628面
- 朝鮮日報(1930. 2. 10, 3. 7)
- 東亞日報(1930. 2. 25, 3. 12)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316·1527∼153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