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29년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이 1930년 들어 전국으로 확대된 가운데 서울에서 이에 동조하는 동맹휴교에 참여하였다. 당시 동맹휴교에는 근화여학교를 비롯해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淑明女子高等普通學校)·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梨花女子高等普通學校)·실천여자고등보통학교(實踐女子高等普通學校)·태화여학교(泰和女學校)·경성여자상업학교(京城女子商業學校)·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등 서울 시내 13개교 학생들이 대거 합세하였다.
당시 근화여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최성반은 1930년 1월 14일 밤 서울 소격동(昭格洞) 하숙집에서 서울 시내 여학교 대표들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 계획을 세웠다. 당일 학교에서 4학년생 김금남(金錦南)과 동기생 김천례(金順禮)가 회의장소를 의뢰하자 흔쾌히 승낙하였다. 당일 하숙집에는 이들과 김귀인복(金貴仁福)·김연봉(金蓮峯)·이충신(李忠信) 등 근화여학교 학생 6명이 참석했다. 이 외에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同德女子高等普通學校) 2명·경성여자미술학교(京城女子美術學校) 2명·배화여학교(培花女學校) 2명·실천여자고등보통학교 2명 등 모두 14명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다음날인 15일 아침 서울 시내 각 학교의 학생들이 동시에 만세를 부르며 종로(鐘路) 쪽으로 시위행진을 하는 일에 대해 협의하였다.
1월 15일 오전 9시 30분경 근화여학교에서 이충신을 선두로 만세를 부르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였는데, 경관이 제지하자 학교 판자벽과 유리창을 깨는 등 적극적으로 맞섰다. 그리고 타교 학생들과 연계하여 광주학생운동을 동정하는 동맹휴교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인해 수십 명의 여학생을 포함해 400여 명이 검거되었으며, 최성반을 포함해 근화여학교 학생도 다수 체포되었다. 대부분의 동료 학생들이 29일 가출장(假出場)으로 석방된 데 반해, 최성반 등 근화여학교생 6명은 30일 근우회(槿友會) 간부 허정숙(許貞淑),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생 최윤숙(崔允淑) 등 28인과 함께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검찰로 송치되었다. 2월 10일 허정숙 등 8명만 최종 기소되었고, 최성반을 포함한 근화여학교생 6명은 기소유예(起訴猶豫)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1. 31, 2. 12, 2. 16)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1. 31, 2. 11)
- 사상(思想)에 관한 정보철(情報綴)(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277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52권 208~210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51권 118, 261면
- 한국민족해방운동사자료집(1993) 제10권 392면
- 기려수필(騎驢隨筆)(국사편찬위원회, 1971) 4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