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9년 10월 31일부터 전라남도(全羅南道) 나주(羅州)와 광주(光州)에서 한일 학생 사이의 충돌로 인해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발발했다. 이후 광주학생운동에 동참하는 동맹휴학이 전라남도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2월 초 서울의 각 학교에서도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동맹휴학이 일어났다.
당시 주시영은 서울의 사립중동학교 예과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2월 7일 등교했을 때 교실 안에서 ‘동지들이여, 싸우자! 우리들을 지옥굴에 빠뜨리려 하는 제국주의적 교육을 배척하자!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것은 싸울만한 싸움이다!’와 같은 문장을 넣은 격문 1통을 발견했다. 주시영은 이를 김형석(金炯錫)에게 건네고 낭독을 권유했다. 김형석이 교단에 올라 이를 낭독한 후 광주학생운동 지지를 위한 동맹휴학을 제안하는 연설을 했다. 이후 이일신(李一信)도 ‘동지 제군이여,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위해 제국주의적 교육을 배척하는 싸움에 일어서자’는 취지의 격문 1통을 발견했다. 그도 김형석에 이어 교단에 올라 동맹휴학을 하자고 연설했다.
주시영은 광주학생운동 지지를 위한 동맹휴학을 촉구하다가 체포됐다. 1930년 12월 19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30. 12. 19)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578~5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