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영광읍민의 추대로 수성장(守城將)이 되어 활약함으로써 군사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동학농민운동이 끝난 뒤 참봉(參奉)으로 임명되었으나 국운이 기울어짐을 개탄하여 귀향하였다. 그 뒤 을사조약이 늑결되어 일제의 국권침탈이 가속화되자, 1906년 봄 영광에서 거의(擧義)하여 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듬해 여름 기삼연(奇參衍)이 장성(長城)에서 거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9월에 수백명의 군사와 다수의 군비를 가지고 고창(高敞) 문수사(文殊寺)에 유진하고 있던 기삼연을 찾아가 의진을 통합한 뒤 기삼연을 맹주(盟主)로 추대하고 그 휘하에서 도포장(都砲將) 겸 군기감(軍器監)이 되었으며,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설치하여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격문을 보내어 거의명분을 천명하였다.
같은해(1907) 10월에는 일군이 야음(夜陰)을 틈타 은밀히 의병진을 포위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고 군사를 좌우로 분산시켜 협공케 하여 일군에게 타격을 가하였다. 이어 법성포(法聖浦)·무장(茂長)·고창·영광 등지을 전전하며 연전연승을 거두고 일인 추방을 목적으로 활동하다가 장성에서 회군하고 말았다.
동년 10월 11일 기삼연과 함께 무장 고산(高山)에 주둔하고 있던 일군을 유인, 공격해 타격을 가하였다. 이어 불갑산(佛甲山) 연실봉(蓮實峰)에서 진을 구축하고 일군과 싸워 승리하였으나, 계속되는 전투로 전력이 크게 소모되어 11월에는 장사산(長沙山)으로 후퇴하여 진용을 정비하였다. 그 뒤 일군은 현상금을 걸고 그를 체포코자 하였는데, 1909년 4월 3일 잠든 사이에 현상금을 노린 배반자에 의해 참살됨으로써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羅州警察分署長報告(日文)(1908. 1. 20) 4·10·11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202面
- 咸平李氏 府院君派家乘(1939. 3. 15 發行)
- 全南道誌 788·817·818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41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0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327·404·537·538·624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751·755·75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2輯 532·578·609·610·611·687·69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3輯 299·300·302·772面
- 全北警察署報告(日文)(1907. 11. 6 李大局名) 4面
- 會盟錄(後隱 金先生(容球) 副謄錄附錄) 26·2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