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9년 12월 함흥고등보통학교(咸興高等普通學校)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동맹휴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9년 11월 이후 일어난 광주학생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동료 학생 조양환(曺陽煥)ㆍ김재용(金在瑢)ㆍ원회찬(元會讚) 등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준비하였다. 같은 해 12월 16일 광주학생운동을 비롯하여 갑산화전민사건(甲山火田民事件), 함흥수리조합사건(咸興水利組合事件)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격문을 만들어 교내외에 뿌리고, 함흥고보를 위시하여 영생학교(永生學校) 등 함흥 시내 각 학교가 일제히 시위에 돌입하려 하였다. 하지만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경찰과 학생 간의 충돌이 일어나, 임세빈 등 30여 명의 학생이 붙잡혔다.
1930년 4월 2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및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 6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9. 12. 28, 1930. 1. 5, 2. 22)
- 朝鮮日報(1929. 12. 28, 1930. 1. 5, 3. 30, 4. 28)
- 中外日報(1930. 1. 5)
- 光州學生事件犯罪者身元調, 思想月報(1931. 9. 15) 제1권 제6호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6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