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8년 5월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에서 함흥고등보통학교(咸興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7년 7월 상순 함흥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중인 이철연 등이 주동하여 동교의 일부 교사 배척 등의 요구 사항을 학교 당국에 제출하고 동교 2, 3, 4학년생 중 조선인 학생 전부가 일제히 동맹휴교하였다가, 그 해결을 부형회(父兄會)에 일임하고 일동 등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형회에서는 1928년 3월까지 해결하기로 약속하고도 일시를 경과하자, 학교 당국 및 부형회의 무성의로 인한 결과라 판단하고, 다시 학생 일동이 결속하여 동맹휴교로 목적을 관철시키기로 결의하였다.
동년 4월 30일 김봉(金逢) 등이 주도하여 5월 1일부터 2·3·4학년 조선인 학생 전부가 동맹휴교할 것을 계획하고, 일부 교사의 퇴직 요구, 작년도 맹휴(盟休)사건 희생자의 복교 등 요구 사항을 동교 및 함경남도청(咸鏡南道廳) 학무과(學務課)에 제출하고, 요구 사항의 관철을 목적으로 일제히 동맹휴교에 들어갔다.
학교 당국이 주동 학생들을 퇴학 또는 무기정학에 처하자, 학생들은 동교 학생 중 동맹휴교에 참가하지 않은 자 또는 동맹휴학의 결속을 교란시킨 자 등을 제재하며 동맹휴교를 지속하였다.
이철연은 주영하(朱寧河), 김상열(金相烈), 이흥기(李興基) 등과 함께 1928년 5월 3일 동교 4학년생 신택현(申澤鉉)에게 맹휴생이 집합할 때 집합한 비밀을 학교에 누설한 것에 대해 주의를 주고, 동교 4학년생 김호경(金浩璟)에게 맹휴에 불참한 이유를 꾸짖으며 동맹에 참여케 하였다. 동년 6월 16일에는 김상열·김인덕(金仁德), 김영일(金榮溢), 김관현(金觀鉉) 등과 함께 맹휴 중 등교한 동교 2학년생 김교선(金敎善)을 훈계하였다.
1928년 7월 12일 구류되어 1928년 11월 30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위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件) 위반 및 상해죄(傷害罪)로 징역 6월(미결통산 115일)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全鮮盟休事件와 刑事判決(高等法院 檢事局:1927), 韓國民族解放運動史資料集(金炅一, 1993) 제10권 307~323면
- 刑事控訴事件簿
- 東亞日報(1928. 12. 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700~7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