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광주(光州) 사람이다.
평소 절친하였던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학생 이경채(李景采)와 박병하(朴 夏)의 항일활동을 지원하였다. 이경채와 박병하는 1928년 3월부터 수 차례 회합을 갖고 일제의 식민정책을 비판하고 사회주의 실현을 주장하는 격문 3종을 수십 통 씩 인쇄하여 동년 4월 경찰관 및 파출소 게시판과 광주고보(光州高普) 앞 전신주 등 각 요처에 부착 또는 배부하였다. 이때 윤해병은 인쇄에 사용된 등사판 및 인쇄물 20여 통을 파기 및 소각하고 인쇄 부속품을 개울에 버리는 등 이경채와 박병하의 항일투쟁 활동을 지원하였다. 윤해병은 이 사건으로 붙잡혀 7개월 여의 옥고를 치루었고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8. 7. 26)
- 豫審終結判定書(光州地方法院, 1928. 7. 21)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1928.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