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화순(和順) 사람이다.
1929년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은 1929년 11월 3일과 11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학생시위가 일어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후 이듬해 3월까지 전국 각처와 국외에서 전민족적으로 전개되었다.
광주학생운동의 시발점이었던 광주지역 학생시위는 성진회(醒進會) 출신의 청년운동세력과 독서회중앙부같은 학생비밀결사의 지도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당시 광주지역에는 독서회중앙부 아래 광주고보·광주농업학교·광주사범학교·광주여고보 등에 독서회가 조직되어 있었으며, 이들 조직은 독서회중앙부를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었다.
당시 광주고보 5학년생이던 박형기는 광주고보 독서회 회원으로 학생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나주역의 한·일학생충돌 소식을 접하면서 광주학생시위를 추진하여 11월 3일과 12일의 학생시위에 앞장섰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금고 4월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716∼71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55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240·247·250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光州學生獨立運動史(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74) 62·290·293·302·307面
- 東亞日報(1930. 2. 20, 2. 22,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