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3일과 11월 12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두 차례에 걸쳐 시위행진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검거되자 12월 초에는 ‘구속학생 석방’과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등을 외치며 서울의 학생들이 연합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의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영식은 이러한 시위소식을 전해 듣고 동교 학생들도 궐기할 것을 계획하였다. 때마침 같은 해 12월 22일 경성청년동맹(鏡城靑年同盟) 집행위원장인 이제백(李濟栢)이 이회송(李會松)·유상화(柳相和)·황백만(黃白萬) 등과 함께 학생들의 동조시위를 촉구하는 내용의 격문 수백 매를 인쇄하였다.
평소 이제백과 가까웠던 박영식은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에 살포하기 위해 이제백으로부터 「조선 피압박 학생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격문 백여 매를 전달받았다. 이어서 동창생인 최억진(崔億進)·김택룡(金澤龍)과 함께 이튿날인 12월 23일 새벽 동교의 학생 대기실에 격문을 살포하였다. 박영식의 계획은 광주학생운동의 실상을 알리고 학생대회를 개최하여 동조시위를 추진하려는 것이었으나, 격문이 발각됨에 따라 12월 24일 체포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30년 1월 27일 일시 방면되었으나, 1월 31일 다시 체포되어 1930년 2월 18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3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이 확정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학교에서는 퇴학당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30. 3. 27)
- 집행원부(執行原簿)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2. 23)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1. 22, 1. 25, 2. 1, 2. 5, 2. 9, 2. 16, 2. 17, 3. 3)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1. 10, 1. 27, 2. 17, 2. 21, 8. 26)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2. 26)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1931) 제1권 제6호 543면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551~15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