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서울의 중동학교 본과 4학년에 재학 중 학우들과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며 민족 독립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1929년 11월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전국의 학생들이 이에 호응하여 동조시위, 동맹휴학 등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중동학교 학생들도 12월 6일 김인배(金仁培) 등의 주도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인배로부터 2차 시위운동을 위임받은 박상점과 조재득(趙再得)·황의태(黃義太)는 1930년 1월 9일부터 2차 시위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급우들을 규합하여 시위를 준비하는 한편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 경신학교(儆新學校) 학생들과 연합시위운동을 협의하였다. 때마침 여학생들도 시위운동을 추진 중임을 알고 이들의 시위계획에 보조를 같이하여 1월 15일 일제히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1월 15일 아침 이들은 “피압박 민족들이여, 야수적인 제국주의를 파괴하라, 기만적인 현재의 노예교육제도를 철폐하라” 등의 문구를 기재한 적기(赤旗) 2개를 제작하였다. 적기의 문구는 박상점이 작성한 것이었다. 오전 11시 20분 800여 명의 학생들은 이들의 선도로 교정에 집결하였다. 학생들은 “약소민족 만세”, “광주학생 만세”, “대한독립 만세” 등의 함성을 지르며 교문 밖으로 진출하려 하였다. 안국동으로 나가 종로 4가에서 다른 학교의 시위학생들과 합류하여 연합시위운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제지로 교내와 인근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30년 6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그러나 검사의 공소 제기로 같은해 7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30. 7. 14)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3. 29, 7. 8)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6. 20)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2. 13, 2. 17)
- 학생맹휴(學生盟休)에 관한 정보철(情報綴) 제1책
- 학생맹휴(學生盟休)에 관한 정보철(情報綴) 제2책
- 사상(思想)에 관한 서류(1)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505~150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5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