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1927년 대구고보 재학 중 학생비밀결사 신우동맹(新友同盟)을 조직하고 동교의 맹휴를 지도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7년 11월 대구고보 학생인 박득룡·윤장혁(尹章赫)·손익기(孫益基)·백대윤(白大潤) 등은 대구시 남산동 백대윤의 집에 모여 '신우동맹'이란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신우동맹은 맹원(盟員)을 3개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박득룡은 조은석이 이끄는 제2그룹에 속했다. 그들은 각 그룹별로 사회과학을 연구하기로 하고 또 대구시내에 있는 각 중등학교의 남녀학생들에게 주의를 선전할 목적으로 각 학교별로 선전위원(宣傳委員)을 두기도 하였다.
그후 박득룡·윤장혁 등은 신우동맹을 해체시키고 다시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하고 1927∼1928년에 걸쳐 혁우동맹(革友同盟)·적우동맹(赤友同盟)·일우동맹(一友同盟) 등으로 조직의 명칭을 변경하며 활동하였다.
1928년 9월 26일 그가 다니던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동맹휴교(同盟休校)가 일어났으나, 학생들의 불참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다시 박득룡은 동급학생들과 함께 제2차 동맹휴교를 계획하고 10월 15일 맹휴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와같은 비밀결사 활동이 일경에 발각되어, 1928년 11월 6일 주도자들 대부분은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29년 8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런데 옥중에서 장진홍(張鎭弘) 의사가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형무소의 가혹 행위로 인하여 장진홍의사가 순국한 것이라는 판단아래 감방의 문짝 등 형무소 기물을 파괴하면서 옥중투쟁을 벌이다가 징역 8월을 가형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日報(1928. 12. 24, 1929. 8. 9, 8. 18, 8. 22, 9. 19, 10. 22, 10. 27, 10. 28, 1930. 2. 28)
- 東亞日報(1928. 12. 13)
- 豫審終結決定書(1929. 8. 7. 大邱地方法院)
- 判決文(1930. 3. 11. 大邱覆審法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1930. 9. 18. 大邱地方法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8卷 947·948面
-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사(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부, 1991) 243·244面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311·312∼31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