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11월 함남 함주군 주서면에서 신사회 건설 관련 문서 배포 활동을 함.
-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군(光州郡)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의 학생들이 이에 호응하여 동조시위, 동맹휴학 등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11일 함경남도 함흥부(咸興府)의 사립영생중학교(私立永生中學校) 학생들도 시가행진을 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에 자극을 받아 함흥공립상업학교 학생들도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문경은은 최예진(崔禮鎭)·원주연(元鑄淵)·윤치선(尹致善) 등의 학우들과 함께 모임을 갖고 1월 14일을 기해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최상의 목적 조선의 독립”, “모여라! 우리 전사여 영광의 깃발 아래로”라고 기재한 2종류의 적기(赤旗)를 제작하였다. 또한 항일 격문 200여 매도 인쇄하는 등 치밀하게 시위를 준비하였다.
마침내 1월 14일 아침 조례 후 문경은을 비롯한 2~3학년 학생 60여 명은 교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들은 시내로 진출하여 신탄시장(薪炭市場) 등 번화가를 거쳐 경찰서 앞까지 행진했다. 그는 큰 깃발을 앞세우고 선두에서 시위를 이끌었다. 시가행진 도중 미리 준비한 항일격문을 거리에 살포하였다. 학생들은 저지하는 일본 경찰과 격투 끝에 해산했는데, 일제는 소방대까지 출동시켜 학생 20여 명을 검거하였다. 문경은도 이때 체포되어 1930년 2월 17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공소를 제기하여 같은 해 3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출옥 후 1931년 11월 6일 함흥자유노동조합(咸興自由勞動組合) 간부인 윤치선(尹致善)으로부터 격문 배포를 의뢰받았다. 이에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형제여 단결하라” 등의 슬로건을 기재한 격문 100여 매를 함주군 주서면(州西面) 제방공사장에 살포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30. 3. 27)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2. 20, 3. 28)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2. 20, 3. 21)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3. 21)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1) 제1권 제6호 548면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4) 제1호 66면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544~154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6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