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북 경성(鏡城) 사람이다.
1930년 2월 1일 함북 경성의 어랑공립보통학교(漁郞公立普通學校)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할 목적으로 김승룡(金承龍)과 함께 약 2백 명의 학생을 규합하여 태극기와 「일본정부에 반대하라」, 「일본 제국주의 타도」라고 쓴 깃발을 흔들면서 일본 통치를 비난하는 선전문서 1천여 매를 살포하고 '광주학생 만세', '약소민족해방 만세'를 고창하면서 어랑면 하남동(河南洞) 강변에서 동면 용천동(龍川洞) 수남시장(水南市場)과 봉강역(鳳岡驛)을 거쳐 어랑공립보통학교까지 시위 행진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의해 붙잡혀 나남(羅南)경찰서로 압송되었다.
1930년 6월 9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일보(1930. 2. 5, 2. 7, 7. 1)
- 동아일보(1930. 2. 4, 2. 15)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316·1536∼1539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