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50073
성명
한자 金辛亨
이명 宏佳(號), 金澤宏佳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일본방면 포상년도 2020 훈격 대통령표창
1942년 8월부터 일본 동경에서 김안수(金安守)·오무웅(吳茂雄) 등과 함께 독립을 위하여 동지적 결합과 독립운동 투신을 결의하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 철폐 및 만주와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상황 등에 대하여 협의하다 체포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김굉가는 1941년 4월 와세다실업학교(早稲田實業學校)에 입학하고 도쿄 시나가와구(品川區) 소재 항공계기주식회사 직공(職工)으로 취직했다. 그는 학교와 직장에서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을 보고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해외의 독립운동 상황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인을 향한 차별대우를 철폐할 것과 조선인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우리들은 조선독립의 지도자로 동지적 단결로 독립의 소지(素志) 배양에 정신(挺身)해야만 한다”고 결의했다.

김굉가는 독립의지 실현을 위해 1942년 2월 중순부터 도쿄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동지로 규합하고, 이들과 누차 회합해 민족적 열의를 보이는 동시에 단결을 강화했다. 이들은 주로 조선인의 전문학교 입학 억제 정책 비판,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착취적인 식민지 정책 비판, 만주와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상황 등을 논의했다. 이러한 활동이 발각돼 김굉가는 1943년 5월 20일 체포됐다.

김굉가는 1943년 9월 2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도쿄지방재판소(東京地方裁判所) 검사국(檢事局)에 송치됐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朴慶植), 1976) 제5집 450~45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3집 1416~1417면.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외소재 일본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애국선열 추모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김신형(관리번호:50073)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