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9년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1930년대 초 일본 교토(京都)에서 반제항일운동 조직의 책임자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9년 11월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4학년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 상해(傷害), 가옥침입, 보안법 위반으로 금고 4월,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1930년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사립 료요중학(兩洋中學)에서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 사건으로 고초를 받은 조선인 학생들을 수용할 목적으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1930년 9월 말 현재 조선인 학생 161명 중 81명이 퇴학을 당했는데, 기회준도 광주고보에서 퇴학을 당하여 일본 교토로 건너가 료요중학에 편입하였다.
기회준은 1930년 6월 21일 조선인 학생들을 모아 재료요조선유학생친목회(在兩洋朝鮮留學生親睦會)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10월 22일 이 친목회에서 주최한 웅변회에서 '조선 학생이 배워야 할 것'이라는 제목 아래 "일본의 노동자ㆍ농민과 단결하고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여 절대적 해방을 기하지 않으면 아니되며, 또 우리는 중국혁명을 지지하고 저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부수지 않겠는가" 등의 내용을 연설하여 경찰의 제지를 받고 중단된 일도 있었다.
1931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 全協)의 출판노조 교토지부 준비회에 가입했으며, 무산청년회 교토지국 책임자로 활동하다 1931년 8월 26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1년 11월 28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기소 처분을 받았으나, 그 결과는 알 수 없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受刑人名簿
- 思想月報(高等法院 檢事局 思想部) 제1권 제6호(1931. 9. 15)
- 東亞日報(1930. 2. 4, 2. 20, 2. 22, 2. 26, 3. 1)
- 每日申報(1930. 2. 26, 1934. 11. 15)
- 朝鮮日報(1934. 11. 15)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ⅰ권 分冊 716~719면, 제ⅲ권 571~572면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朴慶植 編) 2-1권, 3-2권
- 騎驢隨筆(宋相燾, 1955) 4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