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강진(康津) 사람이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시위에 참가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한·일 학생간의 충돌로 발단된 광주학생운동은 11월 3일과 11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학생시위가 일어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후 시위소식이 목포·나주 등 전남지역으로 전해지면서 학생시위가 확산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서울로 점화되면서 이듬해 3월까지 전국 각처와 국외에서 전민족적으로 전개되었다. 광주학생운동의 시발점이었던 광주지역 학생시위는 광주고보를 비롯한 각 학교 한국인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벌어졌으며, 성진회(醒進會) 출신의 청년운동세력과 독서회중앙부같은 학생비밀결사의 지도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이들에 의해 11월 3일 1차 광주학생시위가 일어난 뒤 많은 학생들이 일제에게 붙잡히자, 광주의 학생들은 재차 학생시위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11월 12일에 대규모의 규탄 시위를 결행한 것이다. 이때 강민섭은 광주학생시위의 지도자 장재성(張載性)으로부터 "조선민중이여 궐기하라", "학생대중이여 궐기하라"는 격문 200여 매를 전해 받고 거사 직전 광주여고보 근처에 살포하였다. 강민섭은 이 일로 붙잡혀, 1930년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 출판법으로 금고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542·543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716∼719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光州學生獨立運動史(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74) 61·62·106∼117·132∼141面
- 東亞日報(1930. 2. 20, 2. 22. 3. 1)
- 朝鮮日報(1930. 5. 16)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240·247·250·251·1512∼1524·1611∼162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