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강원도 평창(平昌)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유영묵(劉永默)의 집에서 동지들과 회합하여 4월 4일의 대화면(大和面) 장날 및 이튿날의 평창읍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4월 3일 손상봉(孫相鳳)과 함께 자기 집에서 독립만세운동에 필요한 태극기를 만드는 등 계획을 추진하였으나, 이종하(李鍾河)가 동지를 포섭하는 과정에서 계획이 탄로되자, 일제의 검거작업으로 체포되었다. 이해 6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4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59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968·9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