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남 창녕(昌寧) 사람이다.
만주로 건너간 그는 1914년에서 1927년에 걸쳐 교민들의 계몽과 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교민 자치사업에 진력하였으며 항일구국 자치단체인 경학사(耕學社)와 부민단(扶民團)·한족회(韓族會) 등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길림성(吉林省)의 상의가(商儀街)에서 이기팔(李基八)과 함께 정미소 '부흥태(復興泰)'를 경영하면서 독립지사들의 연락 장소로 활용하였고, 이곳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군자금을 지원하였다.
1927년 4월 교민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생활의 안정을 위한 협동산업의 실천임을 절감하고 김기풍(金基豊)·김진호(金鎭浩) 등 35명의 동지들과 함께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를 결성하고 교민의 상호친선 도모 및 농장의 확장을 위한 자금융자와 생활향상 및 계몽사업을 실시하였다.
1927년 11월 일본 헌병과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中國) 관헌의 교포구축계획을 탐지하고, 윤화전(尹華田)·손정도(孫貞道) 등 10여명의 동지와 함께 길림성에서 동포임시대회(同胞臨時大會)를 개최하여 한인교포의 구축방지를 위한 '한교구축문제대책강구회(韓僑驅逐問題對策講究會)'를 조직하고 이의 간사가 되어 길림성 당국에 항의하는 한편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1932년부터 광복이 될 때까지는 기독교 전도사로서 길림교회에서 시무하며 길림성 신학교(吉林省神學校)를 설립하여 교역자를 양성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429·620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215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144면
- 동아일보(1927.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