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1920년 상해(上海)로 망명한 뒤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 참여하여 의정원(議政院) 의원에 선출되고 감찰원으로 국내에 파견되어 경북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로 돌아왔다.
그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927년 신간회(新幹會) 동경지회(東京支會)의 조직결성에 참여하였으며 1928년 2월 동회의 임시대회에서 대의원에 선출되어 민족정신 고취 내용의 격문 등을 살포하며 활동하였다.
그후 1930년 대구 근교 팔공산(八公山)에서 광선 경영을 위장하여 박영덕·이상훈·심재윤·노석호·김 인 등 애국지사를 규합하였으며, 청년동지들을 연안(延安)으로 밀파하여 독립군(獨立軍)에 가담시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1943년에는 종교계와 협의하여 거액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국내의 무력항쟁 및 중국의 광복군(光復軍)과 합세하여 대일 선전포고(對日宣戰布告) 등을 계획하던 중 아들 희규를 포함한 10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북경(北京)에서 일경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 끝에 아들과 함께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 15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