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북 영양(英陽) 사람이다.
1930년 2월 8일 영양청년동맹(英陽靑年同盟) 석보지부회관(石保支部會館)에서 신간회(新幹會) 회원인 이돌몽(李乭夢)·이태을(李太乙)과 같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탄압정치를 규탄하고, 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파급에 따른 석보면(石保面) 사람들의 동조시위 방안을 협의한 후에 동년 2월 10일 자신의 집에서 조선총독부의 탄압정치에 항거하고 광주학생운동으로 피검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격문 800여매를 인쇄하여 2월 11일 석보면 원리동(院里洞)의 장날에 운집한 주민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혔다.
1930년 4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31년 4월 10일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0. 4. 2 대구지방법원)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