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제에 의하여 체결되자 통탄함을 금치 못하여 거의할 것을 결의하였다.
1906년 5월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전 참판 민종식(閔宗植) 의진이 크게 활약하자 그 휘하에 들어가 홍주성 수비에 전력하였으나 일본군의 홍주성 탈환작전에 패퇴하고 말았다.
그후 재거의할 길을 도모하다가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의 체결에 이어 한국군마저 강제 해산되기에 이르러 전국적인 의병운동이 재개되자 동년 8월 3일(음) 이석용(李錫庸) 의진에 가담하여 동년 9월 20일까지 임실·장수·진안 등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에 동지의병 수명과 더불어 임실 갈담(葛潭)에 있는 일본수비대 숙사의 건물을 파괴하고자 도모하다가 실패하고 방화 혐의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24일에 소위 폭도·강도 및 방화죄로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355∼361면
- 광주지법 전주지청 판결문(1909. 11. 24)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7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