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 1. 15 전남 (全南) 제주도 (濟州島) 신덕리 (新德里) 에서 김두성 (金斗性) , 김일준 (金日準) , 김진희 (金晋熙) , 양구문 (梁龜文) 등과 함께 일본 (日本) 에서 항일운동 (抗日運動) 하던 한영섭 (韓永燮) 이 동경 (東京) 에서 사망 (死亡) 하여 그 사체가 같은 달 19일 향리로 들어오자 장례식을 치르던중 「불평등한 사회를 파괴하여 무산계급 (無産階級) 의 자유를 건설하려 한 그대는 죽었어도 그대의 주의 정신 (主義精神) 은 동지마다 계승하여 분투할 것이니 안심하라」 등의 기 (旗) 를 제작하고 추모비 (追慕碑) 를 세워 비문에 ‘차디찬 흰빛밑에 눌리인 무리들아 고함쳐 싸우라고 피뿌린 동지였다’라고 썼다가 같은 해 4월 12일경 피체 (被逮) 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執行猶豫) 5년을 받았으나 미결기간 (未決期間) 중 8월간 (月間) 옥고 (獄苦)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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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1930년 김두성(金斗性)·김일준(金日準) 등 동지들과 같이, 동리의 영향력 있는 부녀자 한승렬(韓承烈) 등 다수에게 야학(夜學)을 통하여 한글을 가르치면서 민족 사상을 고취하였다.
1931년 1월 15일 전남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함덕리(咸德里)에서 김두성·김일준·양구문 등과 함께, 일본 동경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한영섭(韓永燮)이 사망하여 그 사체가 같은 달 19일 향리로 돌아와 장례식을 치르던 중 "불평등한 사회를 파괴하여 무산계급의 자유를 건설하려 한 그대는 죽었어도 그대의 주의정신(主義精神)은 동지마다 계승하여 분투할 것이니 안심하라"는 내용의 기(旗)를 제작하고 추모비를 세워 "차디찬 흰빛 밑에 눌리인 무리들아, 고함쳐 싸우라고 피뿌린 동지였다"라고 비문을 썼다가 같은 해 4월 12일경 일경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그는 1931년 8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1931년 12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의 형이 확정되기까지 8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1. 12. 8 대구복심법원)
- 동아일보(1931.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