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 12. 7. 서울 중동학교 (中東學校) 에 재학 중 광주에서 전개된 광주학생운동에 고무되어 동교 (同校) 교실내에 ‘제국주의 교육 철폐’ 등의 격문 (檄文) 을 발견하자 교단 (敎壇) 에 올라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제국주의 교육을 배척하는 싸움에 분기 (奮起) 하라’는 내용의 격문을 낭독하고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동맹 휴교 (同盟休校) 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년여의 옥고 를 치른 끝에 징역 8월 집행유예 (執行猶豫) 4년을 받았으며 1939. 2월 동경 (東京) 유학생 출신의 박용칠 (朴容七) 과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0개월의 옥고 를 치르고 불기소 (不起訴) 되었으며 1942년 7월 서울에서 소위 행정집행령 (行政執行令) 으로 검속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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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충북 충주(忠州) 사람이다.
1929년 12월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 재학시 광주학생운동의 전국확산에 계기가 되었던 서울지역 동맹휴교(同盟休校)에 동참하였다. 이일신은 강대성(姜大成) 등과 함께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을 조직하여 격문의 인쇄 배부 및 동맹휴학·만세시위 등을 주동하였다.
이일신은 이 조직의 주요 관계자로 주시영(朱時永)·김형석(金炯錫) 등과 함께 동년 12월 7일 동교 교실에서 "동지제군이여,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제국주의적 교육을 배척하는 싸움에 분기(奮起)하라"는 취지의 격문 내용을 학생들에게 연설하여 동맹휴학과 만세시위를 촉구하였다. 이 사건으로 1년 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0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0. 2. 9·9. 15·9. 20·9. 21·10. 17·10. 26·10. 31·11. 1·11. 2·11. 19·11. 20·11. 21·12. 13·12. 16·12. 20·12. 21)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30. 12. 19)
- 朝鮮日報(1930. 11. 20·12. 14·12. 20·12. 21)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292面
- 騎驢隨筆(宋相燾) 400·411·41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