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 1. 25 전북 (全北) 이리 (裡里) 청년회관 (靑年會館) 건축위원회 (建築委員會) 모임 때 상무위원 (常務委員) 을 맡은 후, 1926. 7. 11 이리 (裡里) 욱정 (旭町) 이봉교 (李奉敎) 집에서 개최된 「이리청년회 (裡里靑年會) 」 발기대회 (發起大會) 에 참석 (參席) 하여 집행위원 (執行委員) 에 선출 (選出) 되어 이리 (裡里) 제 단체 (諸團體) 를 「이리청년회 (裡里靑年會) 」로 다시 결집시키는데 활약했으며, 1927. 12월 백남순 (白南純) 의 집에서 이리 (裡里) 중외일보 (中外日報) 지국장 (支局長) 박표 (朴豹) ·동아일보 지국 (支局) 총무 (總務) 김병수 (金炳洙) 외 삼십여명과 함께 이리 (裡里) 재만동포옹호동맹 (在滿同胞擁護同盟) 을 조직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징역6월을 받아 옥고 (獄苦) 를 치르는 등 1년 4월여간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전북 김제(金堤) 사람이다.
1926년 1월 25일 전북 이리(裡里) 청년회관 건축위원회 모임에서 상무위원으로 선임되고, 같은 해 7월 11일에 개최된 이리청년회(裡里靑年會)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출되었으며 사회부를 맡아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이리 지역 13개 단체 대표 30여명이 모여서 재만동포옹호동맹(在滿同胞擁護同盟)을 결성할 때에 조선일보 이리지국장 자격으로 참여하여, 재만 동포에 대한 중국 동삼성(東三省) 군벌정권 관헌의 비인도적 처사에 대해 거족적으로 항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돌연 일경의 검거령에 의해 수십명의 인사와 함께 그도 붙잡혀, 1928년 3월 6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6. 1. 24, 7. 16, 7. 26, 1927. 12. 12, 1928. 7. 31)
- 名籍表(1928. 3. 6, 全州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