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일본 유학생인 남궁혁(南宮赫)이 귀국 후 서울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작된 3.1독립운동 소식을 목포(木浦)에 전하면서 만세시위가 추진되었다. 1919년 4월부터 목포 각 지역에서 만세운동 시도가 나타났다.
강원도(江原道) 평강중학교 교사였던 이은득은 방학 중 상경하여 오빠 이병휘(李秉輝)에게 상황을 듣고 부모님이 계신 목포로 귀향했고, 남궁혁 등의 만세운동 추진자들과 교류했다. 그는 4월 8일 영흥학교와 정명여학교 학생‧청년‧기독교인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5일에 목포경찰서에서 취조를 받았고 1919년 6월 14일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2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609~612면
- 조선일보(朝鮮日報)(1972.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