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서울 마포(麻浦) 사람이다.
1895년 8월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일본(日本) 낭인(浪人)의 손에 의하여 시해당하자 내무대신직(內務大臣職)을 사퇴하고 은거생활을 하기 위하여 낙향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국권을 침탈한 후 간교하게 국권을 농락하면서 인심을 수합한다는 명목으로 국내 유력자들에게 주는 소위 작위(爵位)와 은사금(恩謝金)을 받지않고 끝내 거절하였다.
그후 1918년 9월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여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창설·운영하던 이회영(李會榮)이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국내에서 활동할 때 5만원을 조달하여 원조하였다. 그리고 1918년 광무황제(光武皇帝)를 해외에 망명시켜 국권침탈에 따른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며 국제여론에 호소하기 위해 이회영에게 5만원을 주어 망명지의 주거임대수리를 추진하던 중 1919년 2월 광무황제의 갑작스런 붕어로 인하여 계획이 중도에서 좌절되었다.
1919년 전 협(全協)과 최익환(崔益煥)이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을 조직할 때 관여함으로써 민족운동에 가담하였으며, 또한 1921년 1월 10일 동아일보(東亞日報)가 정간되었다가 3개월 후에 해제되었으나 운영자금이 없어 속간이 지연되고 있음을 알고 홍증식(洪增植)을 통하여 5천원을 출자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이회영약전(李丁奎, 李觀稙) 53·5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43면
- 동아일보사史 161면
- 고등경찰요사 189면
- 민족운동가 아내의 수기(李思淑) 162면
- 조선인명사서(상) 2, 008면
- 조선인명대사전 2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