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평남 대동군(大同郡) 금제면(金祭面) 원장시장(院場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일본 헌병을 처단했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2일 심응무(沈應武)는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조선독립선언서를 원장리 예수교회당에 전달하였다. 이를 본 임이걸(林利杰)은 고덕린 등과 함께 3월 4일 원장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협의하였다. 4일 오전 10시경 임이걸 등이 예수교회당 앞에 모여 시위 군중 수천 명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를 향해 행진하자, 차병규도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어 시위 행렬이 시장 입구에 도착하자, 미리 정보를 입수한 일본 헌병들은 총을 난사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분노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거세게 저항하자,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사천(沙川)헌병주재소장 사토[佐藤]와 헌병보조원들은 달아났다. 이때 차병규 등은 달아나는 사토를 추격하여 붙잡아 처단하는 한편, 헌병보조원들도 찾아내 처단하였다. 또한 이들은 전날 사천시장 시위로 갇혀있던 동지들을 전원 구출하였다. 그러나 이날 시위투쟁 중 일본 헌병들의 총격으로 현경묵(玄景默) 등 14명이 사망하였고, 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때 차병규도 사토를 쫓아가던 도중 헌병보조원이 쏜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평양 기홀병원(紀忽病院)에 입원 치료하였다.
이로 인해 차병규는 1919년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살인,방화,소요,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794~795면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12. 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09~4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