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충남 서천(舒川) 사람이다. 1942년 2월 배재중학교(培材中學校)에 재학할 때 학우인 신낙현(申洛鉉)·정준영(鄭俊永)과 같이 민족의 독립을 목적으로 항일투쟁을 계획한 그는 1944년 6월 충남 서천군(舒川郡) 문산면(文山面) 문장리(文章里) 자택에서 신낙현(申洛鉉)·김옥돈(金玉敦)·한정헌(韓楨憲)에게 "조선독립사상을 버리지 말 것"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후 동년 7월 19일 '일본 제국주의는 반드시 패망한다는 것과 우리 민족은 조국의 독립이나 민족해방을 위하여 궐기할 것'이라는 내용의 전단 400여 매를 종로(鐘路) 및 광화문(光化門) 일대에 배포하고, 이어 8월 서울에 소재한 함평여관(咸平旅館)에서 신낙현(申洛鉉)과 같이 당시 일본 수상이던 동조영기(東條英機)를 비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리하여 1945년 4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45. 4. 18 경성지방법원)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