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전남 고창(高敞) 사람이다.
일찍이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였던 그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내려왔으며, 1906년 4월 면암 최익현(崔益鉉)이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거의하자 김재구(金在龜) 등 장사 수십명을 이끌고 이에 참가하여 고용진(高龍鎭)의 부대에 소속되었다. 1906년 6월 16일에 최익현의진이 순창 구암사(龜岩寺)를 거쳐 순창에 도착하자 그는 포군장(砲軍將)에 임명되었으며, 채영찬(蔡永贊)·김갑술(金甲述)로 수포수(首砲手)를 삼고 휘하에 3백여명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군과 대치하게 되어 "동족끼리 싸울 수 없다"하고 면암이 스스로 포박되자 의병진도 자연 해산하게 되었다. 그는 이후 부하를 이끌고 기삼연(奇參衍)·박도경(朴道京) 의병진에서 일병(日兵)과 계속 싸웠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73·377면
- 돈헌(遯軒)유고(全) 창의일기 12면
- 최익현의 포군장임명장(1906. 閏4)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84·85면
- 서신(최익현 190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