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평북 (平北) 태천군 (泰川郡) 태천면 (泰川面) 태천공립보통학교 (泰川公立普通學校) 6년생 (年生) 으로서 동료 이성건 (李成健)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동면 (同面) 왕정동 (旺井洞) 김영준 (金永俊) 가 (家) 에서 태극기 (太極旗) 를 그리는 등 거사 계획을 수립하여 1920. 8. 31 일본왕 (日本王) 명치 (明治) 의 생일 (生日) 을 계기로 동교 6년생 (年生) 을 중심으로 약 100명을 동원하여 6일간을 계속하여 태천읍내 (泰川邑內) 를 순회 시위하며 대한독립만세 (大韓獨立萬歲) 를 부르고 주모자로 피체 (被逮) 되어 징역 4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평북 태천(泰川) 사람이다.
1920년 당시 태천군 태천면(泰川面)의 태천공립보통학교 6학년생으로 이성건(李成健)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왕정동(旺井洞)에 있는 김영준(金永俊)의 집에서 태극기를 만드는 등 모든 준비를 갖추고 1920년 8월 31일 일왕(日王)의 생일을 계기로 거사를 일으키기로 약속하였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거사날인 8월 31일 100여 명의 군중을 동원하여 6일 동안 계속해서 태천읍내를 순회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혔다.
그리하여 같은 해 9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태천군지(태천군민회, 1973) 12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상권 189면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