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1918년 세브란스 의전(醫專)을 졸업하였으며, 다음 해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동년 3월 단장인 신현구(申鉉九)의 명에 의하여 군자금을 지참하고 상해 임시정부에 밀파되어 전달한 후 그곳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한 후 그곳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하기도 하였다.1921년 임시정부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년 8월에는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가 조직되자 그는 양하창(梁瑕彰)과 함께 간사로 임명되어 같은 해 9월에 "태평양회의 선언서"를 발표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1월 25일에는 상해에서 대한적십자회 정기총회가 개최됨에 그는 동회의 상의원(常議員)에 뽑혀 활동하였다.1922년 10월 28일에 결성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에 가입하여 이사를 역임하였는데, 그해 말에 만주 독립군이 노·중 국경지대에서 추위와 식량난에 굶주린다는 소식이 상해로 전해지자 노병회에서는 성금을 모금하여 급원금(急援金) 50원을 독립군부대장 김규식에게 송금하는 등 활동하였다.또한 김 구(金九)·이유필(李裕弼)·여운형(呂運亨)·손정도(孫貞道)·나창헌(羅昌憲) 등이 중심이 된 노병회는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고, 군인 양성과 독립전쟁의 비용조달을 목적으로 조직되어 무장항일투쟁의 결의를 굳게 하였다.1929년에 귀국한 그는 군자금 모집을 계획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자, 사상을 초월하여 민족독립 의지로 뭉쳐서 조직된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였으며, 동년 7월 21일에는 신간회 서울지회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그러나 국내에서의 활동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전북 전주, 평북 철산 등지로 옮겨 다니며 병원을 개업하여 의료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14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5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43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7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7권 1307·134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62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314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235 236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03·104·110·111·115·117·123·125·129·135·137·138·139·152·16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