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09년 부친을 따라 만주 흥경현(興京縣)으로 이주하여 중국인 학교를 다녔다.
그러므로 중국어에 능통하였기 때문에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梁世奉)의 보좌역으로 일군과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1932년 8월 청원(淸原)에서 패전하여 신빈현 왕청문(新賓縣旺淸門)에서 재기를 계획하고 있던 양세봉 사령관이 일 헌병과 경찰에 탐지되어 순국하자 상해임시정부를 찾아가 당시의 상황을 보고하였다고 한다.
1935년에는 중국 국민군 제2집단군에 입대하여 계속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항일전에 참전하였고, 광복시에는 중국 국민군 구국군 독립제1사단 제1사장(第一師長)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광복후에는 국군준비사령부 사령관으로 건군에 이바지하였으며, 반민특위(反民特委)의 반민탐정위원장(反民探偵委員長)으로도 활동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16면
- 자유신문(1945.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