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20년 1월 16일 남만 (南滿) 에서 만주기원독립단 통의부 (滿洲紀元獨立團統義府) 에 입대 (入隊) 활약 (活躍) 하였고 1925년 6월에 평북 초산 벽동2군 (平北楚山碧潼二郡) 에 밀파 (密派) 되어 일경 (日警) 주재소 (駐在所) 를 습격 (襲擊) 하였고 우편국 등 (郵便局等) 일제 기관 (日帝機關) 에 극심 (極甚) 한 피해 (被害) 를 입혔다.
2. 1927년 1월 26일봉천성 집안현 대양리 (奉天省輯安縣大陽里) 에서 독립군 참의장 (獨立軍參議長) 전승학 (全承學) 과 피체 (被逮) 동년 (同年) 12월 신의주지방법원 (新義州地方法院) 에서 사형 언도 (死刑言渡) 를 받고 1929년 3월에 평양고등법원 (平壤高等法院) 에서 무기 언도 (無期言渡) 를 받고 대전 (大田) , 서대문형무소 (西大門刑務所) 에서 복역 (服役) 중 (中) 해산 (解散) 을 맞아 석방 (釋放) 되다
(한국독립운동사 (韓國獨立運動史) p 449)
(항일순국의열사전 (抗日殉國義烈士傳) p 303)
(동아일보 (東亞日報) 1928.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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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7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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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위원(渭原) 사람이다.
1919년 고향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고 만주 유하현으로 건너갔다. 그후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에 가입하여 검찰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20년에는 독립단 제2중대 3소대원으로서 초산(楚山)·창성(昌城)·태천(泰川)·구성(龜城) 등지에서 적기관 파괴, 군자금 모집 등을 전개하였다.
1922년 통의부(統義府)에 소속되어 친일파 처단에 주력하다가 임정직할의 육군 주만참의부(駐滿參議府)가 성립되자 소대장에 임명되어 무장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1927년 3월 초순에는 동지 10여명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국내에 진입하여 벽동군 운치면 운하동(雲下洞)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일경을 사살하고 총 4정과 탄환 100여발을 노획한 외에 전후 네차례에 걸쳐 각처 주재소를 습격하여 일경을 사살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대원들을 모두 탈출시킨 후 그는 신의주경찰서원에게 체포되어 1928년 3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4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8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828면
- 동아일보(1928. 5. 8, 5. 10)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