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광복단 (光復團) 군자금 (軍資金) 모집 (募集) 에 관련 (關聯) , 체포 (逮捕) 되어 1918. 10. 19. 면소 (免訴) 로 석방 (釋放) 된 후 조선국권회복단 (朝鮮國權恢復團) 중앙총부 (中央總部) 조직 (組織) 에 참여 (參與) 하고 군자금 (軍資金) 을 헌납 (獻納) 하였으며, 백산무역주식회사 (白山貿易株式會社) 의 취체역 (取締役) 사장 (社長) 및 지배인 (支配人) 으로 상해임정 (上海臨政) 에 군자금 (軍資金) 을 보내고 1921. 9월에는 워싱톤 태평양회의 (太平洋會議) 에 보낼 청원서 (請願書) 에 경주대표 (慶州代表) 로 서명 (署名) 하는 등 활동 (活動)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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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경주(慶州) 사람이다. 그는 경주 지방의 대지주(大地主)로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과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관계하면서 거액의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독립운동단체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특히 대한광복회 총사령인 박상진(朴尙鎭)과는 사촌 처남의 관계로 자신의 재력을 바탕으로 대한광복회의 재무(財務)를 맡기도 했다. 그리하여 대한광복회가 발각될 때, 이에 연루되어 붙잡히기도 했던 그는 3·1독립운동 이후 상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역시 거액의 자금을 송달하였다. 그가 송달한 자금의 액수가 얼마만큼 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 안희제(安熙濟)와 함께 경영하던 백산무역주식회사(白山貿易株式會社)가 1백여만원의 부채를 지고 파산될 만큼 거액이었다고 한다. 한편 그는 1921년 9월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에 보내기로 한 청원서에 경주대표로 서명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서(1918. 10. 19 공주지방법원)
- 고등경찰요사 184·185·25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195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2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21·45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913·91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7·67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673-7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