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평안남도 중화(中和) 사람이다.
1919년 3월 2일 김동식(金東植)·이동흡(李東洽)·김진영(金振榮)·김병준(金炳俊) 등과 함께 상원 신읍(祥原新邑)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천도교(天道敎)인들이 중심이 된 시위군중과 함께, 경찰주재소에서 주재소의 철거를 요구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이를 해산시키려 하자,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경찰을 역습하여 주재소 안으로 몰아넣고, 총기와 탄약을 빼앗는 동시에, 마침 순찰차 이곳에 와 있던 중화경찰서장 고색국치(高索菊治)와 순사부장 전촌삼랑(田村三郞)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투석으로 파괴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우편소장의 긴급 타전을 받은 평양경무부(平壤警務部)에서 12명의 보병과 2명의 경찰을 이곳에 급파하였다.
이에 상황은 역전되어 빼앗은 총기와 탄약을 다시 빼앗기고 강제로 해산되었다.
그후 그는 일경의 일제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1919. 5. 23)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804∼80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권 9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