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19년 3월 15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동리 서당 생도 및 마을 사람 수십 명과 경미산(更美山)으로 올라가서 산 위에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대한 독립만세를 외쳤다.
1920년 7월경 신덕영(申德永)과 함께 대동단의 포고문과 경고문을 휴대하고 전라남도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만주와 간도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신덕영은 1919년에 3.1운동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독립군 자금을 모집했다. 이를 상해(上海)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로 보내려 했다.
조병렬도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본천면(本村面) 일곡리(日谷里) 노석중(盧錫仲)의 집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로의 전달 계획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12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 1921. 5. 31)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5. 1. 6. 4, 7. 1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569∼5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