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경북 김천군(金泉郡) 개영면(開寧面)에서 3·1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같은 해 10월경 군자금 1,000원을 개인 재산의 처분으로 마련하는 한편 동삼성(東三省)에 이동녕·이시영 등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청년 3명을 모집하여 동삼성(東三省) 안동현(安東縣)으로 가서 조강제(趙强濟)에게 인계하였다고 한다. 1920년 2월 다시 경주지방에서 군자금 및 신흥무관학교 학생모집을 위하여 활약하다가 붙잡혀 1921년 4월 14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소위 공갈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1921. 4. 4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