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길학성은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 동부동(東部洞) 천도교구장으로 국장(國葬)을 참배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종로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천도교 중앙총부 박인길(朴寅浩)의 지시로 영변군 동부동에서 만세운동을 준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길학성은 1919년 2월 25일 평양에서 천도교 도사 오영창(吳永昌)의 전보를 받고, 28일 서울 천도교 중앙총부에 가서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를 부른다는 계획을 전달받았다. 다음날 태화관과 종로 등을 이동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일 길학성은 중앙총부의 지시에 따라 지방에서 제2, 3의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지시받고 영변으로 돌아왔다.
그는 3월 5일 영변에 돌아와 여러 차례 교인들과 접촉하며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3월 11일 영변군 영변면 용포동(龍浦洞) 천도교도 김형성(金瀅垶)의 집에서 교도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하고, 비록 죽더라도 대도주의 명령을 준수하도록 명령하였다. 하지만 이날 그는 잠복해 있던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길학성은 5월 2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28)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0) 11집 208~211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0) 12집 177~179면
- 東亞日報(1925. 11. 5)·時代日報(1925. 11. 6)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編, 1967) 分冊 第1卷 680~681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1) 別集 1권 315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