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신정균은 신간회(新幹會)·근우회(槿友會) 등을 통해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문맹퇴치를 위한 부인 교육 등에 힘썼다.
1928년 7월부터 신정균은 근우회 경성지회(京城支會) 재무부를 담당하며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근우회는 민족협동전선운동의 일환으로 조직된 여성운동단체로 민족독립과 여성차별 철폐 등에 앞장섰다. 그는 재무부 및 정치문화부 등을 담당하는 한편, 1929년에는 근우회 전국대회 준비위원 및 중앙검사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신정균은 1929년 8월 경성여자소비조합(京城女子消費組合) 창립을 주도하여 창립위원이 되었다.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여성운동 및 사회운동을 전개하던 그는 1930년 2월 ‘조공재조직준비위원회사건’으로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중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났다. 석방 후에도 신정균은 근우회 중앙검사위원장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으나, 1931년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 思想問題에 關한 調査書類(國內 抗日運動資料) 4·6
- 中外日報(1930. 2. 25, 3. 22, 4. 2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415, 419, 420, 424면
- 東亞日報(1929. 7. 2, 7. 6, 8. 20, 1930. 3. 15, 3. 23, 12. 18, 12. 29)